201904. 공간SPACE. 논현동 앤샵 Nonhyun N#
 

골목길 근생

인공 대지 Artificial Land
대지에 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과하게 가파른 골목길을 주춤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이었다. 개발 당시 만든 블록 내부도로가 지형과 무관하게 직선 격자로 생긴 탓에, 차도 사람도 속도를 내기 어려운 급한 경사를 감내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건물을 앉히기 전, 이를 먼저 극복하고자 했다.
우선 대지조성을 위해 두어야 하는 높은 옹벽을 닫힌 덩어리 대신에 여러 개의 판(plane)으로 세웠다. 옹벽을 해체하고 건물과 경계를 없애어 옹벽도 건물의 일부로 다루었다. 세워진 판들 사이로 틈새를 두어 도시와 통하게 했고, 그에 면한 급한 경사로에 공공에 내어주는 보행계단을 별도로 마련하여 배려하였다.

두꺼운 지면 Thick Ground
소위 근린생활시설로 불리는 소규모 임대건물에서 주어진 프로그램은 지극히 단순하고 아직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아 공간의 요구는 구체적이지 않다. 하물며 높은 지가로 인해 최대 임대수익이 선의(善意)가 되곤 한다. 이곳에서 과연 건축가는 어떤 도시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도시와의 접촉면을 최대화하는 것으로 그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도로에 접한 면의 7m에 가까운 높이 차는, 건물이 도시와 만나는 지면을 두껍게 다루는 단초가 되었다. 가장 완만한 쪽으로 주차출입을 해결하고 낮은 지면 쪽에서는 지하층 임대공간으로 바로 연결하였다. 지하1,2층과 1층, 2층까지 도시에서 직접 진입이 가능하다. 지면과 두껍게 만나게 함으로써, 도시 골목이 가지는 활기와 보행자들의 자유로운 부유(浮游)가 다양한 레벨에서 건물 안까지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외피 Deep Skin
도로 폭에 비해 높이가 높은 건물이라 골목 밀도와의 조율이 필요했다. 하지만 비좁은 대지에 허락된 건폐율 범위 안에서 적극적인 외부공간을 만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대신 건물을 분절하여 거대한 매스로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돌 나무 콘크리트 금속 등 비교적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재료 하나의 단위 모듈은 잘게 나누었다. 또한 두꺼운 석재 외벽과 대조되도록 유리창 부분은 최대한 안으로 밀어넣었다.
서로 다른 크기와 질감을 가지는 독립적인 판들이 사용자의 이동을 따라 분리되거나 겹쳐지며 건물 외피에 깊이를 부여한다.

지연 이동 Delayed Movement
벌려놓은 판 사이에 의도적으로 동선을 놓았다. 저층부의 일자계단은 기준층에서 돌음계단으로 바뀌었다가, 사옥으로 쓰이는 상부층에 이르면서 다시 풀어진다. 이는 법규 제한선에 대응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동선 방식의 변화로 경험의 속도를 바꾸고자 했다.
1층의 진입테라스와 계단실에서 문득문득 엿보이던 도시 원경은 상부 테라스와 옥상정원에 이르면서 마침내 온전히 펼쳐진다. 판 사이의 공간은 도시 전망을 가지면서 움직임을 지연하고 외부를 경험하는 장소가 되었다. 밀도 높은 골목 안 건물에서 바깥 도시를 바라보는 여러 층위의 공간이 가치를 지닐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