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 동아일보. 방이 거실이 되는 아파트
 

독신이면서 드라마피디인 그녀
몇 년 전 사무실로 한 클라이언트가 찾아왔다. 방송국에서 드라마 만드는 일을 하는 그는 혼자 사는 자신을 위해 33평형 아파트를 수리하고 싶다고 하였다. 20여 년 전 당시 가장 보편적이었던 4인 가족을 기준하여 설계된 공간이었다. 33평의 면적은 부엌 옆의 작은 방까지 포함하여 4개의 방과 2개의 화장실로 잘게 나뉘어 있었다.
반면, 건축주는 침대가 들어가는 단 한 개의 방 외에는 나머지 공간 모두가 거실 혹은 작업실이 되기를 원하였다. 혼자 사는 그에게 집은 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밤샘 작업과 간단한 스태프 회의도 하는 일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방들은 안방, 큰애방, 작은애방 처럼 기존의 가족 누군가를 대변하는 이름이 아니라, 책보는 방, 음악 듣는 방, 이야기하는 방, 뒹구는 방 처럼 구체적 쓰임으로 일컬어졌다. 방들은 방을 쓰는 주인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성격으로 이름되었고, 집의 모든 방은 거실이 되었다.

유학생 딸을 둔 맞벌이 부부
새로 집을 짓겠다고 찾아온 사업을 하는 맞벌이 부부도 원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부부는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평일에는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거의 없고, 중학생 딸이 하나 있지만 영국 유학 중이다. 대신 주말에는 집에서 부부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에게 거실은 방보다 훨씬 중요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방이 자기네 필요 이상으로 많고 막상 거실은 쓰임보다 좁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새로 짓는 집에서 거실이 하나의 커다란 공간으로 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유학 중인 딸이 방학이 되면 서울에 오기 때문에, 딸의 공간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하였다.
방학 중에 잠시 집에 오는 딸과 넓은 거실을 원하는 부부를 위해서, 우리는 넓은 하나의 공간이 미닫이문으로 나뉘어 방으로 구획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게 되었다. 마치 다다미 방과 같이, 방과 방이 합쳐져 커다란 거실이 되기도 하고, 또 커다란 거실이 몇 개의 방으로 나뉠 수도 있는 방식이다. 여기서 거실과 방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그 크기와 쓰임을 규정하게 되었다.

3대가 함께 사는 가족
약사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아이가 생기면서 시댁에 들어가 산다. 일을 하면서 육아와 가사를 감당하기 어려워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3세대가 함께 사는 집은 방 4개짜리 48평형 아파트이다. 안방 쪽 두 방은 부부침실로 계획되어 충분히 크지만, 현관 쪽 방은 자녀 방으로 설계되어 그 크기가 작다. 안방을 시부모님이 쓰시기 때문에, 그 맞은 편 방을 김씨 부부가 쓰기는 불편하고, 현관 쪽 방은 두 사람이 쓰자니 크기가 넉넉하지 않다. 지금은 좁아도 현관 쪽 방 두개를 침실과 옷방으로 쓰며 그런 데로 맞춰 살고 있지만, 딸 하나, 아들 하나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방을 따로 줘야 하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방을 나누어 쓸지 고민이다.

그 외에도 김씨에겐 말 못하는 고민이 또 하나 있다. 그녀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왠만해선 거실에 나가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니 시아버지가 늘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란다. 김씨에게 거실은 그저 시아버지의 공간일 뿐이다.
거실이 집의 한가운데에 위치함으로써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 될 거라 여기는 것은 너무 순진한 기대가 아닐까. 우리네 거실은 언제부턴가 TV에게 점령당해 TV채널권을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다. 사방으로 열린 채 집의 중앙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거실 때문에, 내 방에 조용히 있고 싶어도 거실의 TV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고, 행여 손님이라도 오시면 방 안에 갇히는 상황이 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실은 주방이나 화장실로 갈 때 거치게 되는 거대한 홀이나 복도와 다를 바 없다.
때론 공간도 폭력적이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이 그런 것처럼 가족의 생활 방식과 다른 집이 그러하다.

거실을 움직여보자
작금의 아파트가 쓰임에 따른 유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평면의 한가운데에 거실이 가장 크게 위치하면서 각 방들을 지배하고자 함이다. 세월이 흘러 가족의 숫자가 변해도, 부모 세대와 분리가 필요해도, 그 동안 거실은 집 한가운데에서 굳건히 그 아성을 지키며 권력을 고수해왔다.
거실이 평면의 중심이 아닐 수 있어야 한다. 거실을 움직여보자. 거실과 방의 크기를 동등하게 만들고, 그 중 어느 방이라도 거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 가족구성원에 따라 공간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아이가 하나인지 셋인지에 따라, 아이가 갓난아이인지 성장한 대학생인지에 따라, 시부모님과 같이 사느냐 아니냐에 따라, 적절하게 거실과 방들의 위치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안방 거실도 가능하고, 문간방 거실, 부엌방 거실도 가능해진다. 또 방들의 크기가 동일하니 공간의 위계가 분명치 않아, 한 집에 여러 개의 거실도 만들 수도 있다.

보다 넓은 거실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우리의 한옥을 접목해보자. 한옥은 칸(間)이라는 통합된 시스템 아래 3칸 집에서 99칸 집까지 탄력적으로 지어졌다. 이제 아파트를 한옥의 칸과 같은 체계로 만들자. 그리고 그 칸의 경계를 미닫이문이나 접이문으로 하자. 그러면, 우리는 크기의 가변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방의 시스템이 통일되고 방의 경계가 가변적이 된다면, 사용자가 쓰임에 따라 방의 크기를 정하고 방의 개수를 조절해 더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사용자가 스스로 규정하는 공간의 확장과 분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집 가운데 거실이 없는 아파트, 방이 거실이 되는 아파트를 꿈꾼다.
거실은 방과 방 사이의 거리를 정하면서 가족구성원 간의 분리와 통합 방식을 결정한다. 거실의 위치를 자유롭게 함으로서 방과 방 사이의 관계가 집마다 새롭게 정의되는 아파트를 상상한다.
또 방이 지금처럼 그 크기의 차이로 공간의 위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공간의 성격에 따라서 또 다른 방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서 집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규정하는 아파트를 생각한다.
거실이 자유로워지면, 아파트가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