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 공간SPACE. Book Review
 

테크놀로지의 종말 Technolution
마티아스 호르크스 Matthias Horx
21세기 북스 2009

SF영화에서 그려지는 미래에선 음식 대신 알약 몇 개로 끼니를 해결하고, 집 안 곳곳에 연결된 컴퓨터 스크린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공중을 떠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누빈다. 중력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지능을 가진 로봇과 대화하며, 실제와 가상의 정보가 경계를 허무는 세상이다. <메트로폴리스>에서 시작되어 <블레이드 러너>와 <매트릭스>에서 진보하고, 최근 <아바타>에서 원시림으로 회귀하는 단계까지,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비전은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함께 새롭게 상상되며 끝없이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미래를 향한 이러한 상상이 얼만큼 현실이 될 수 있을지는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상상 속의 제품들을 하나 둘씩 실현 시켰다. 미래를 상상하는 영화나 그림에 등장했던 화상전화와 인공지능 로봇 등은 이미 현실에 가깝게 구현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우리 중 여럿은 여전히 화상통화 보다는 문자 메세지를 선호하고, 이메일도 종이로 다시 출력해야 직성이 풀리며, 여행을 가면 아직도 그림엽서를 구매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래학자이면서 트렌드 전문가인 저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바로 그 지점에 비판적 시선을 던진다. 인류의 오랜 기대를 쫓아 과학기술로 이루어낸 첨단기기들, 그 장미빛 미래를 열어줄 거라 기대했던 첨단 기기들이 실제로는 어떻게 퇴색해 갔으며, 생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리라 믿었던 그 기기들이 왜 반쪽 짜리 성공 밖에 하지 못했는가를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저자의 주장은 책의 부제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하지 않는다”로 간단히 대변될 수 있겠다. 그는 기술의 진보를 담은 기계들이 많은 불가능들을 실현 가능한 현실로 만들었음에도, 그것들이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사라졌다고 진단한다. 그의 관찰은 1인용 전동 스쿠터인 세그웨이(Segway)를 비롯해, 자동차와 비행기의 중간쯤 되는 수많은 시도들,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가 디자인한 다이맥션(Dymaxion) 자동차에서 스마트피시(Smartfish)까지를 아우른다. 1800년대의 미래 삽화를 지금의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고, 인간의 한없이 자유로워지려는 욕망들을 볼 수 있는 유토피아 해저도시의 사진에도 눈길이 간다. 아이러니하지만, 저자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기발하지만 어딘지 어설픈” 시도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책장을 넘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또한, 저자는 면도기와 진공청소기 먼지봉투, 알미늄 캔 뚜껑에서 시작하여 자동차와 휴대폰에 이르는 실례를 통해 생활용품의 형태 진화를 추적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가 자연계의 진화법칙과 동일하게 생활용품의 진화과정에도 적용됨을 보여주는 삽화와 도표도 등장한다. 이것들은 마치 생물학 계통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수많은 실례를 통해 저자는 테크놀로지의 생존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단독적인 발전으로는 불가능하고 사회기술과 연관되어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크놀로지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단순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 행태적인 습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본문 중 존 마에다(John Maeda)의 “단순함은 삶을 즐겁게 하며 괴로움을 없애준다”는 인용구는 주목할 만하다. 티볼리 라디오와 아이폰의 경우처럼, 복고풍의 로우테크나 단순함으로의 귀환한 전략이 성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비록 책의 한글 제목은 “테크놀로지의 종말”이지만, 원제인 ”Technolution”은 Technology와 Solution의 합성어인 것으로 미루어, 저자는 기술의 부정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발전적 미래를 찾고자 하는 관점으로 저술했다고 생각한다. 유선 전화가 개통되자, 당시의 미래를 상상하는 그림에 화상전화가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듯 기술의 진보는 우리의 욕구와 상호작용한다. 막연한 욕망을 기술이 현실로 만들고, 새로운 기술로 더 큰 자유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어떤 혁신적 기술이 등장해도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거라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한다. 인간에 대한 내면적 이해를 가진 기술, 인간 스스로의 철저한 자기화를 통하여 만이 그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진정한 미래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와 겉도는 ‘과학기술’에 대한 저자의 논지가, 내게로 와선 필요 이상의 첨단 ‘건축’과 자꾸 겹쳐지며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