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 WIDE. 일상의 도시건축 Architecture of Everyday Life
 
현실 강남 뒷골목, 집장사들의 도시
시원스레 뚫린 10차선 도산대로 뒷길엔 채 20평도 되지 않는 필지들이 존재한다. 블록의 앞면은 대형 필지 위에 반듯하고 높은 커튼월 빌딩들이 세워졌지만, 뒷면은 환지수법방식이 양산한 극소 필지들과 심각한 주차난을 겪고 있는 6m, 4m의 골목길이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과도한 지가상승으로 소형필지를 합필하여 4-5층의 다세대들이 빼곡히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어떤 곳은 건축주 스스로 대지를 둘로 분할해 팔면서 대지 안의 대지가 되어 대지 내에 작은 골목길들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곳은 변화의 틈바구니에서도 여전히 70년대 개발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아직 남아있는 집들은 당시 집장사들에 의해 지어진 소위 ‘불란서식 미니 2층집’이다. 불란서와 아무 관련도 없는 이 집은 반지하와 어슷한 경사지붕을 가지는 비슷비슷한 유형을 보여준다. 고층빌딩 껍데기 속, 이미 다세대가 무성하게 자리잡은 틈새에 이런 노후한 집들이 여전히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 일상의 필요에 따라 바꾸다
늘어나는 사무실과 상업시설에 대한 요구는 단숨에 블록 안쪽까지 파고 들었다. 미니 2층집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이은 개조와 불법 증축으로 초기 모습과 무관하게 마당은 주차공간으로 바뀌었고, 반지하 공간은 상점으로, 다락방은 거주를 위한 제대로 된 2층으로 개조되었다. 하지만, 전문가 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된 개조 때문에, 건물의 구조는 심각하게 불안하고, 결로와 누수도 심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내부공간의 짜임은 현재의 쓰임과 그리 정확하게 맞지 않는다.
논현동 프로젝트의 경우는 원래 단독주택으로 지어진 미니2층이었지만, 먼저 지하와 2층에 별도 세대 임대를 주는 다가구주택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웨딩샵이 되었다가 다시 사무실로 개조되었다. 원형은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고, 1층 홀 여러 군데에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파이프들을 마구 박아 놓은 상태였다. 신사동 프로젝트1은 빨간 벽돌집이 디자인 사무실로 개조되면서 지붕까지 온통 하얀 페인트를 덮어쓰고 있었고, 기능적으로도 반지하 공간과의 연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신사동 프로젝트2는 비교적 원형이 남아 있는 골목 안 주택이었으나 주변이 다 상업시설로 바뀌면서 자신들도 미용실로 개조되길 원했다.

이론 도시건축의 pro-sumer
미셀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그의 책,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일상생활의 실천)"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대해 소비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개입, 반응하여 저항 혹은 적응하는 적극성을 띄는 것에 대해 논하였다. 그리고, 그 적극성을 띄는 소비자를 pro-sumer (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라고 일컬으며, 생산과 소비의 이중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의 논리를 도시로 확장해 본다면, 건물을 쓰는 사용자의 저항과 적응을 통해서 건물의 내외부적 한계상황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겠다. 즉, 변화하는 외부요건들에 건축물을 어떻게 적자생존 시키느냐의 관점이다. 더 이상 도시건축을 한 순간에 만들어져 고정불변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내부 수용자와의 동적 관계를 통해서 문화적 재생산을 해나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또한, 한 장소가 사용자와의 교감을 통해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그곳에 장소의 정체성이 부여될 수 있다.

유행 지속 가능한 건축 sustainable architecture
Sustainability가 건축계에서 유행처럼 대두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자원과 에너지의 최소 소비와 재활용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본질은 다름아닌 재료와 에너지의 경제적 효율성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는 노후한 건물을 약간만 손 봄으로써 충분히 가능한 새로운 해석을 뒤로하고, 완전히 허물고 다시 쓰는 선택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sustainability는 재료와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새 건물을 짓는 것만 아니라, 그것을 다시 짓기 위해 기존 것을 쉽게 부수는 것에 대한 반성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우리에겐 현재의 도시를 부정하고 완전히 다시 쓰는 방식이 아닌, 조금은 부족해도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조금씩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능성 느린 건축 slow architecture
도시에 대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건축주와의 계약관계 속에서 작업의 기회가 주어지는 건축가가 과연 도시문제에 얼만큼이나 적극적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일 수도 있고,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사회적 전략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강남 블록 안쪽에 일련의 미니2층 개축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것이 비록 싸구려 집장사 집이지만, 우리의 과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소중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아름답진 않더라도 오히려 그것들은 시간과 문화가 배어 고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시대의 요구가 달라짐에 따라 그것들은 쇠약해지고 비정상적으로 변형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부정하고 새로이 쓰기 보다는, 그것들의 가능성을 읽어 건강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바로 잡고 바꾸어주는 것이 도시에 대한 건축가의 중요한 몫이다.
도시에게 건축가는 예술가라기 보다는 차라리 의사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멋진 디자인을 하려 하기보다는 병들고 아픈 상태를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바꾸는 것 정도로 작업의 수준을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다.
조금은 느린 건축을 생각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건축의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강하면 자칫 독단적인 주장이 될 수 있고, 또 너무 느리면 과거의 답습이 될 수 있다. 적절한 속도로 은근하게 일상에 개입하여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도시의 건강함을 만들어내는 것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