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 PLUS. 죽기 전 가봐야 할 현대건축: Rem Koolhaas의 Kunsthal, Rotterdam NL, 1992

 

유럽 여름의 맑고 선명한 날씨를 보기 전까지 인상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 생생하게 살아나는 풍경, 그것은 미술책으로 본 그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유쾌한 색채였다.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과는 사뭇 달랐다. 암스테르담이 역사가 묻어나는 고도시라면, 로테르담은 전후에 새롭게 세운 현대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로테르담에 대한 내 인상은 가볍고 깨끗하고 젊은, 그리고 약간은 헐렁한 그런 분위기였다.
쿤스트할은 로테르담 시내 뮤지움파크 한쪽 끝면에 위치하였다. 공원이 마치 건물로 이르는 서곡과 같았다. 공원을 통과하는 동안 햇살과 자연이 벌이는 화려한 색의 향연은 건물로 향하는 발길을 자꾸 붙잡았다. 진입다리의 완만한 아치를 서서히 넘어서니 쿤스트할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가가보니 공원 반대 쪽에서는 반대로 건물이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규정된 것은 없었다. 공원과 건물이 서로의 입구가 되면서 건물의 앞과 뒤를 말하기도 어렵고, 건물은 도로를 품고 있어 건물이 나눠진 듯 하지만, 돌고 돌며 서로 연결된다. 바닥과 램프가 구분이 모호하여 무엇이 수평이고 무엇이 경사인지, 어디가 동선이고 어디가 방인지 경계를 흐린다.
상반된 두 개의 가치가 정방형의 상자 안에서 낯설게 공존한다. 바닥과 램프 사이, 내부와 외부 사이, 복도와 전시장의 사이를 느끼는 것에 바로 쿤스트할의 즐거움이 있다. 또한 그것들은 단단한 듯 가볍게 만들어져, 구축하지만 자유롭고 강하지만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쿤스트할은 무엇을 주장하고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여러 상황을 제시하고, 그런 상황이 충돌하는 현상을 한 발짝 물러서서 관찰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저 던져만 놓고 기다려주는 작가가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야속하기도 하다. 새로운 해석, 제대로 된 해석의 몫을 감당해야 하니까.
쿤스트할에 갔던 것이 벌써 14년 전이다. 그동안 건축이 실제로 직업이 되었고, 인생에도 조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 상자 안의 것들이 아직 건강하게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며 자유롭게 공존하는 그 상자를 다시 받게 된다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해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