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 동아일보. 칭따오 Qingdao, China
 

식민지배의 역사는 분명 치욕의 역사다. 하지만 중국 산둥성 지방에 위치한 칭따오(靑島)는 그 아픈 과거를 역이용하여 도시문화로 발전시키고 있다. 칭따오의 독일 식민 통치 시기에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들은 이국적인 풍광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자원이 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길게 형성된 칭따오 시는 도심 가운데 자리한 타이핑(太平)산을 기준으로 서쪽으로는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 지역이 있고, 동쪽으로는 새로 개발된 현대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기존의 도시를 허물고 그 위에 새것을 만들려하지 않고, 동쪽으로 도시를 확장시킨 것은 오늘날 칭따오에겐 현명한 판단으로 남았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을 때나 씬하오산에 오르면, 칭따오시의 과거와 현재가 언제나 겹쳐진다. 식민지배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의 보존과 관리는 단순히 잘나가는 경제 항구도시 칭따오를 넘어서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청정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이다.

칭따오는 1897년부터 근 20년 동안 독일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 기간동안 근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서쪽 해안지구에 남아있는 많은 유럽풍의 건물들과 도로들은 그 당시 개발된 것이다.
빨간 박공지붕을 가진 누런색 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은 나무들과 잔디에 둘러싸여 완만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 건축가들에 의해 개발된 이 지역은 독일양식의 건축물들 외에도, 러시아, 영국, 프랑스, 덴마크, 스위스, 일본 등의 건축물이 남아 있어 “건축박물관” 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또한 이 덕택에 중국의 역사문화도시로 꼽히면서 ‘환경보호 모범상,’ ‘도시 녹화상,’ ‘거주 환경상’ 등을 수상하였다.
찌앙강중 거리에서 만난 린 홍 씨는 “칭따오가 여느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은 ‘중국 안의 유럽’을 느낄 수 있다는 독특한 개성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건축물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데에는 '건축보존협회'의 역할이 있었다. 협회는 1982년 칭따오시 문화재관리국(文物局)으로 흡수되면서, 그 첫 사업으로 시내의 많은 역사적 건물들에 대해 공식적 리스트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독일 정부가 주둔했던 총독부나 영빈관 같은 중요 공공건물들만을 포함하였지만, 점차 그 대상을 민간 소유의 주거 및 상업건물까지 확대시켰다. 이 작업은 작년까지 일곱 차례 계속되어, 이제 리스트에 등재된 건물은 모두 220개에 이른다. 보호 대상 지정은 단일 건축물 뿐 아니라, 역사 건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지역과 돌로 포장된 가로까지 포함한다.
공식적으로 건물이 등록되면 정부의 보호와 관리를 받게 된다. 지정된 건물의 외부는 변경할 수 없고, 내부는 문화재관리국의 허가를 받아야 변경할 수 있다. 또한 건물로부터 50m 떨어진 곳까지는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건물을 함부로 짓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200m까지는 신축하는 모든 건물들은 시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문화재관리국의 리유 홍 얀 씨는 “이런 건물들의 보존은 단지 역사적 가치로서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 매우 중요하다.” 라고 말한다.

중국의 도시들은 개발권이 대부분 시장에 일임되면서 매해 7% 이상의 성장 목표를 내세우고 야심 찬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 취하는 방법은 다들 유사한 듯 보인다. ‘세계 제일의 항만건설' '세계 최고의 조선소'... 이는 상하이도, 텐진도, 광저우도, 다렌도 모두 마찬가지다.
도시들은 경쟁적 관계다. 특히 항구도시의 경우 인접한 두 도시가 동시에 성장하기 힘들다.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항구도시들 사이에서 칭따오는 개성 있는 도시환경과 역사유적으로 차별화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도시가 가진 것 중에서 그들만의 것을 안으로 발견하고 키워, 밖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칭따오 시청 건설국의 꽌 난 씨는 "칭따오 시의 강점은 도시가 구역 별로 성격이 분명하고, 구역간의 이동이 쉽다는 데에 있다" 라고 말한다.
옛 것을 허물고 손쉽게 새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새 것과 병치시킬 때, 그 가치는 대조를 통해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