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 동아일보. 산타페 Santafe, NM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산타페는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도심에 250개의 갤러리가 밀집되어 있는 예술 도시다. 산타페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미술시장 규모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두번째로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꼽혔다. 대도시에서 가까운 것도 아니고, 국제공항도 없을 뿐더러, 미국 내에서도 사막을 가로질러야 닿을 수 있는 이 도시에 연 2만5천명의 관광객을 찾게 만드는 도시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과연 무엇이 이 작은 도시를 이렇게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가.

산타페에는 인디안 원주민들의 문화가 곳곳에 배어있다. 또한 스페인 식민지시대 교회들이 드문 드문 남아있고, 멕시코 문화와의 혼재가 있다. 자연은 높은 고도와 건조한 사막기후 때문에 다른 장소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강렬한 태양 광선과 깊은 색채를 빚어낸다. 도시를 들어서면서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원초성은 아마도 이 강렬함에 기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주어진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 만을 가지고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주어진 자원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자리매김을 위해 노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산타페를 개성있게 만드는 가장 첫번째는 도시 전체의 경관을 만드는 진흙 건축물이다. 이것은 ‘아도비 양식’으로 불리우는데, 애초에 건조한 날씨와 높은 고도 때문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지 않아 시작되었다. 집을 진흙과 짚으로 짓는 이 방법은 점차 도시의 독특한 개성이 되었다. 이에 시당국은 독특한 건축양식이 도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1950년대 부터는 신축 건물들도 아도비 양식만으로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다섯 개의 역사지구를 정하였고, 건물의 높이를 최대 3개층으로 제한하면서, 건물의 아웃라인을 비롯하여, 건물의 색깔과 재질을 제한하였다. 또한 모든 신축건물은 HRB(historic review board)라 불리는 위원회를 통하여 까다로운 사전 심의와 검열을 거쳐야만 한다. 이로써 몇 십년이 흐른 지금, 아도비 건물은 이제 산타페의 가장 독특하고 가치있는 양식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많은 경우 건축양식에 대한 시의 강력한 규제가 자칫 도시를 과거 속으로 묶어두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의 거주성, 실제성이 떨어지고, 이미지화 상품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페의 이미지가 진정성을 가지는 이유는 건물이 단지 외양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는 컨텐츠와 어우려져 도시민의 생활 속에서 자리하도록 애쓴 결과이기에 그러하다.
예술 문화는 산타페 도시 콘텐츠의 중심에 있다. 산타페에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예술가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Canyon Road 주변으로 1000 여명의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 뿐더러 시민의 여섯 명 중 한 명은 예술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산타페 현재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 예술문화 산업이다.
많은 예술가들 중에서 조지아 오키프(Geogia OKeeffe)는 산타페를 대표하는 작가다. 주변환경에의 매료, 자연풍경의 추상화, 사막 한가운데에서의 은둔생활 등 그녀는 작품과 삶 모두에서 뉴멕시코의 독특한 지역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산타페가 그녀를 성공적인 씨티 마케팅의 도구로 사용한 것도 그 이유다. 우리도 요즘들어 지역의 컨텐츠를 개발하면서 중소도시마다 유명 작가미술관을 건립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단지 출생의 연고지라는 얇팍한 연결 고리 만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미술관이 지역의 마케팅 수단이 되려면 적어도 작가의 작품세계와 삶 자체에서 지역성과의 연관관계가 전략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오키프 미술관은 별도로 리서치 센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지역의 특징이 어떻게 작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작가가 그것을 표현해 내었는지를 깊이있게 이해하고, 현재에 다시 위치시킨다. 올 하반기 오키프 미술관의 전시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꽃과 오키프의 꽃을 함께 수평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녀를 과거의 작가로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문맥으로 끌어내어 의미를 확장하고, 재설정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근래들어 산타페는 현존하는 아도비 건물과 조화되는 현대 건축의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있다. 리카르도 레고레타(Ricardo Legorretta)와 같은 멕시코계 건축가의 지역성에 대한 몇몇 작업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심플한 기하학적 조형과 강렬한 칼라대조 등을 통해 아도비와의 현대적 중재를 시작했다.
또한 시는 관광객에 밀려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지역주민들을 도심으로 되돌리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최저 임금 지원 및 도심 문화시설의 지역주민 대상 프로그램과 입장료 면제등의 혜택은 도심을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실제의 도시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이다.

산타페에서는 사물들이 너무나 가까이 다가온다. 내면의 본질을 드러내거나 혹은 들여다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도시다. 쇼윈도우 너머로 보이는 예술작품들과 도자기. 텍스타일. 보석 등의 공예품들이 도시를 거니는 즐거움이다. 가장 전통적인 공간에 전시된 예술품들의 현대적 번안을 통하여 도시의 개성을 어필하고 있다. 매혹적인 이국적 정취와 이미 이룩한 성과는, 자칫 나이든 관광도시가 가지는 외양적 재현이나 보존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우려를 딛고, 문화 예술 도시 산타페가 현재 기울이고 있는 시도들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